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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네 안에 나

만 12년 만에 태어나는 다섯 번째 시집니다. 그동안 시를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품어도 쉽게 내놓을 수 없었던 이유들은 첫째는 시를 향한 몰입의 시간이 부족한 탓이었고 둘째는 어떻게 발효시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시점에서 꺼내어 맛깔스럽게 느껴야 하는데 두 권의 산문집에 밀려, 이제야 이름을 붙여 세상 밖으로 내밀어 본다.

산에 사는 물고기

늘 깨어 있고 싶다. 깨어 있다는 말, 이 말에는 열려 있다는 의미도 있다.

그리하여 깨어 있음이란 몸과 마음이 열려 있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내보낼 수 있는 상태이다.늘 깨어 있다면 일관된 사유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

삶을 만들어감에 있어서 때론 보이지 않는 그 환상의 몸부림,
그 몸부림에서 벗어날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詩를 향한 마음.
참으로 깊었다.

정운스님 포트폴리오

흙, 물,불(地,水,火)이 이루어 낸 스님의 도예 창작 작품이 수록 되어 있다.

"순간순간 사람을 받아들이는 몰입의 상태, 적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는 고집은 할 필요가 없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창의적인 수행법을 작품 속으로 몰입을 하여 얻어낼 때 삶의 모든 것이 수행이 된다. 또한 삶 자체가 바로 작품일 것이다. 그 작품은 일상의 내 삶의 그릇이며 또 다른 모습으로 잉태되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작가의 서문 중에서-

사람의 향기

살면서 잔잔히 흐르는 생활의 이야기들을 글을 표현했다. 누가 읽든 나는 상관없다. 그저 내 느낌 그대로 표현을 했을 뿐이다.

제목을 "사람의 향기"라고 붙였는데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흔히 체취하고 한다. 이런 평범한 체취 속에 살다가 어느날 문득 사람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사바에 산다고 할수 없을 것이다.

스님 요즈음 뭘 하십니까

자기 내면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우린 애써 공유할 일들을 찾기 위해 매일 바깥으로 나가보지만 그것은 결국 혼자라고 생각할 때 찾아오는 외로움을 잠시 잊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지내느냐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뭘 하느냐가 궁금한 그 말속에 내 수행의 '화두' 가 들어 있다.

아직도 그곳엔 희망이 있더라

방생은 한자로는 傍生이라고 쓸 때는 넓적한 生類라 하여 물고기를 뜻하고 放生이라고 쓸 때는 생명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적극적인 행위를 말한다. 방생은 미물이나 동물 즉 살아있는 생명들에게만 국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현대적 의미로 말할 수 있다.

인간학적으로는 인권보장, 깨끗한 정치, 효도사상, 친절 신용, 상하질서 등이며 사회복지학적으로는 이웃돕기, 고아구제, 의료제도보장, 노후복지, 빈부격차 줄이는 것, 자연학적으로는 매연, 공해방지, 생태계 질서, 산림녹화 어류, 수렵 마구잡이 금지, 식수보존 등으로 말할 수가 있다.

- 나무방생 중에서 -

달을 보는 섬

이 시집을 내놓기까지 나는 전에 없이 많은 번민과 혼돈 속에서 참으로 힘들게 보냈다.

그 힘듦은 나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함정들이었다. 나는 그 함정속에 묻혀 강하게 질책을 하면서도 때론 타성에 젖은 자신을 스스로 그 함정 속에 내던져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광기처럼 번쩍이는 영감의 자아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일깨워 갔다.

- '서문' 중에서

또다른 이름되어

나는 허허로운 가슴 속에 본능적인 행위의 출구를 찾고싶어 노래를 부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나다운 참한 비구니로 어제도 오늘도 그러고 싶어 또 하나의 이름을 붙여 내 품에서 떠나 보낸다.

- 작가서문 중에서

그대그대 자신으로

말이 말장난이 되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서 모든 이들의
가슴이 될 때 그 때 나는 그를 時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어느덧 흙을 접한 지 20년이 되었다

흙을 만지고 성형하는 일은(無)애소 유(有)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마음밭에 생각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마음밭에 잘 뿌려진 씨앗들은 1250도라는 고온의 불에서 각각의 다른 모양으로 새로 태어난다. 그리고 결과르 의도했든 의조하지 않았든 각기 가지고 있는 그 본성을 보여주는 것이 도예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수행자의 여정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수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갈무리 되어지는 모양의 결정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