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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와 남의 단점이 크게 보일 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6.17
첨부파일0
추천수
4
조회수
270
내용
절 지을 터를 구입한 뒤 우리는 말 그대로 빈털터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우리가 산 터에는 아무 건물도 없고, 심지어 비를 가릴 움막조차 없었다.  그래서 처음 몇 주 동안 누워 잘 침대도 없이 헐값에 구입한 중고 문짝 위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바닥의 습기가 올라오지 못하게 문짝 네 귀퉁이에 벽돌을 받쳐 땅바닥에서 약간 뜨게 했다. 매트리스 같은 것도 없었다. 우리는 숲 속 고행승들이었으니까.

  주지 스님은 당연히 가장 상태가 좋고 평평한 문짝을 차지했다. 반면에 내가 누워 자는 문짝은 군데군데 홈이 파이고, 손잡이가 있던 자리에는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을 가리키면서 나는 밤중에 소변을 보러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하지만 사정은 달랐다. 구멍으로 밤새도록 차가운 냉기가 올라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리는 절 짓는 일이 시급한 가난한 승려들이었다. 그렇다고 인부들을 고용할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재 값만 해도 허리가 휘었다. 하루빨리 나 스스로 집 짓는 법을 배우는 도리밖에 없었다. 땅을 파 기초를 세우고, 시멘트와 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리고, 배관 시설을 하는 등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내 손으로 해야할 판이었다. 출가하기 전 나는 이론물리학자였고 고등학교 교사였다. 따라서 육체노동에는 그다지 잔뼈가 굵은 몸이 아니었다. 몇 해가 지났을 때는 집 짓는 솜씨가 꽤 늘어서 나와 내 동료 수행자들은 '절사모(절 짓는 사람들의 모임)'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당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벽돌 쌓는 일이 일견 쉬워 보일지도 모른다. 먼저 흙손으로 시멘트 반죽을 한 덩어리 퍼서 바르고 그 위에 벽돌 한 장을 얹은 뒤, 오른쪽을 한두 번 두드리고 다시 왼쪽을 한두 번 두드리면 된다. 그러나 처음 벽돌을 쌓기 시작했을 때는 수평을 맞추기 위해 한쪽을 두드리면 반대쪽이 올라갔다. 그래서 그쪽을 두드리면 이번에는 벽돌이 일직선을 벗어나 앞쪽으로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쪽을 밀어 넣으면 이번에는 반대쪽이 높아졌다. 일머리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나를 무시하기 전에 당신도 한번 해 보라.

  명색이 수행자인지라 나는 참을성에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또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따라서 아무리 오래 걸린다 해도 모든 벽을 완벽한 형태로 쌓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첫 번째 벽을 완성한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감탄의 눈으로 내가 쌓은 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제야 중간에 있는 벽돌 두 장이 어긋나게 놓여졌음을 알아차렸다. 다른 벽돌들은 모두 일직선으로 똑발랐지만, 두 벽돌만은 각도가 약간 어긋나 있었다.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벽돌 두 장 때문에 벽 전체를 망치고 만 것이다! 실망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때쯤 시멘트는 이미 굳을 대로 굳어 벽돌을 도로 빼낼 수도 없었다. 나는 우리의 리더인 주지스님에게 그 벽을 허물고 다시 쌓자고 제안했다. 솔직히 말해 허무는 정도라 아니라 완전히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토록 공을 들였는데 일을 망쳤으니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벽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방문객들이 찾아와 우리의 미숙한 절을 안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외부 사람들이 가능하면 내가 쌓은 벽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누구라도 그 잘못 쌓아 올린 벽을 보는 걸 나는 원치 않았다.


  절을 다 짓고 서너 달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어느 날 한 방문객과 함께 절 안을 거닐다가 그가 그만 그 벽을 보고야 말았다. 

  그 남자는 무심코 말했다.

  "매우 아름다운 벽이군요."

  내가 놀라서 물었다. 

  "선생님, 혹시 안경을 차에 두고 오셨나요? 아니면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가요? 벽 전체를 망쳐 놓은 저 잘못 놓인 벽돌 두 장이 보이지 않나요?"
  그가 그 다음에 한 말은 그 벽에 대한 나의 시각, 나아가 나 자신과 삶의 많은 측면에 대한 나의 전체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물론 내 눈에는 잘못 놓인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더없이 훌륭하게 쌓아 올린 998개의 벽돌들도 보입니다."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석 달 만에 처음으로 그 두 개의 실수가 아닌, 벽을 이루고 있는 훌륭하게 쌓아 올린 수많은 벽돌들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 잘못 놓인 벽돌의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에는 제대로 쌓은, 완벽하게 놓인 수많은 벽돌들이 있었다. 그 완벽한 벽돌들은 두 장의 잘못된 벽돌보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았다. 

  그 전까지 내 눈은 오로지 두 개의 잘못된 벽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눈뜬장님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 벽을 바라보는 것조차 싫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것도 싫었다. 그 벽을 폭발시켜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훌륭하게 쌓아 올려진 벽돌들을 볼 수 있었다. 벽은 전혀 흉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 방문객이 말한 대로 '매우 아름다운 벽'이었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그 절의 벽은 그곳에 그대로 서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잘못 얹힌 벽돌 두 장이 어디께 있는지도 잊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더 이상 그 벽에서 잘못된 벽돌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살마들이 상대방에게서 오직 '잘못 놓은 두 장의 벽돌' 만을 발견함으로써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어 가거나 이혼으로 치닫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 안에서 ' 두 장의 잘못된 벽돌'만을 바라봄으로써 좌절감에 빠지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는가?

  실제로는 거기 훨씬 많은 훌륭하게 쌓은 벽돌들, 완벽한 벽돌들이 존재한다. 잘못된 것의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 사방에는 멋지게 쌓아 올린 수많은 벽돌들이 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그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 대신 우리 눈은 오로지 잘못된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때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잘못된 것뿐이고, 우리는 그것만이 그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파괴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때로 우리는 슬프게도 '매우 아름다운 벽'을 실제로 폭파시켜 버린다. 

  인간은 누구나 두 장의 잘못 놓인 벽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각자 안에는 그 잘못된 벽돌보다 완벽하게 쌓아 올린 벽돌들이 훨씬 많다. 일단 이것을 아는 순간, 상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게 된다. 그때 우리 자신과 평화롭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상대방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이것은 이혼 전문 변호사들에게는 수입이 줄어들 나쁜 소식이겠지만 우리 자신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나는 이 경험담을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한번은 내 얘기를 다 듣고 나서 한 건축 전문가가 직업상의 비밀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우리 건축가들도 늘 실수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객에게 그것이 다른 건물들과 차별화시켜 주는 그 건물만의 특별한 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다음 수천 달러를 더 청구하지요."

  당신 집의 '특별한 점'은 어쩌면 실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차가지로, 당신이 자기 자신 안에서, 상대방 안에서, 혹은 삶 전체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어쩌면 당신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 주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당신이 오로지 그것들에만 초첨을 맞추는 일을 중단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 아잔 브라흐마 스님의 술취한코끼리 길들이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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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리수

    감사합니다

    11 개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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